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이라도 대통령의 서명 없이 곧바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이를 국회로 돌려보내 다시 심의를 요청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헌법이 보장하는 법률안 재의요구권, 즉 대통령 거부권이다. 이 권한은 단순히 정부와 국회 사이의 갈등 도구가 아니라, 삼권분립 원리를 구현하는 헌법적 장치다.
- 대통령 거부권의 공식 명칭은 '법률안 재의요구권'으로, 헌법 제53조 제2항에 근거한다.
- 대통령은 법률안을 이송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재의를 요구하거나 공포해야 한다.
- 국회가 재의결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 재의결이 성립하면 해당 법률안은 대통령의 서명 없이 법률로 확정된다.
- 거부권은 입법부의 권한을 견제하는 삼권분립 원리의 핵심 장치 중 하나다.
- 대통령은 법률안 전체에 대해서만 재의를 요구할 수 있고, 일부 조항만 골라 거부하는 부분 거부권은 허용되지 않는다.
헌법적 근거: 제53조가 말하는 것
대통령 거부권의 법적 토대는 헌법 제53조다. 이 조항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이 정부로 이송된 뒤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세 가지 경로를 규정한다. 첫째는 15일 이내에 법률안을 공포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의서를 붙여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는 것이며, 셋째는 아무런 조치 없이 15일이 경과하도록 두는 것이다. 세 번째 경우에는 법률안이 자동으로 법률로 확정된다.
재의요구는 반드시 15일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기간을 넘기면 대통령은 더 이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법률은 공포 없이 효력을 갖게 된다. 기간 제한을 두는 이유는 행정부가 입법 절차를 무한정 지연시킬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행사 절차: 어떻게 이루어지나
거부권 행사의 절차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국회 의장이 가결된 법률안을 정부에 이송하면, 대통령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재의요구 여부를 결정한다. 재의를 요구하기로 결정하면 이의서를 작성하여 법률안과 함께 국회로 환부한다. 이의서에는 재의 요구의 이유가 명시되어야 하며, 단순한 정치적 불만이 아닌 헌법적·법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회는 환부된 법률안을 재의에 부친다. 이때 주목할 점은, 재의 과정에서 법률안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는 원안 그대로 가결할 것인지, 아니면 부결시킬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내용 협상은 별도의 입법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재의결 정족수: 3분의 2의 의미
국회의 재의결은 일반 법률 가결 정족수보다 훨씬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재의결이 성립한다. 이 기준은 의도적으로 높게 설정된 것이다. 대통령이 이의를 제기한 사안을 국회가 뒤집으려면 그만큼 강력한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원리다.
재의결이 성립하면 해당 법률안은 대통령의 공포 없이도 법률로 확정된다. 반대로 재의결이 부결되면 법률안은 폐기된다. 과반수를 넘는 지지를 받았더라도 3분의 2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폐기다. 이 때문에 거부권은 국회 내 다수당이 3분의 2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특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부분 거부권이 없는 이유
한국 헌법은 법률안의 일부 조항만 선별하여 거부하는 이른바 ‘부분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법률안 전체에 대해 재의를 요구해야 한다. 이는 행정부가 입법 내용을 조각조각 선택하는 방식으로 국회의 입법 의지를 왜곡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설계다.
미국 등 일부 나라에서는 예산 관련 법안에 한해 항목별 거부권을 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헌법 체계에서는 법률안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보아,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권력 균형을 유지한다. 특정 조항만 빼고 나머지를 살리고 싶다면, 재의 요구 후 별도의 수정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삼권분립 속에서의 위치
거부권은 대통령제에서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긴장을 관리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입법부가 다수결로 통과시킨 법률이라도 행정부의 동의 없이는 쉽게 효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동 장치’다. 반대로 국회가 충분히 강력한 다수를 형성한다면, 대통령의 의사에 반하는 입법도 관철할 수 있다. 이처럼 거부권과 재의결 제도는 두 기관이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합의를 향해 나아가도록 설계된 구조다.
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 거부권은 소수(행정부)가 다수(입법부)의 결정에 절차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 권한이 없다면 의회 다수파는 행정부의 입장과 무관하게 어떤 법률이든 즉시 확정시킬 수 있고, 이는 권력 집중을 초래할 수 있다.
흔한 오해와 실제
거부권에 관한 오해 중 하나는 대통령이 법률안의 내용을 ‘수정’하여 돌려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통령은 재의를 요구할 수 있을 뿐, 법률안의 문구를 고치거나 조건을 달아 환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 다른 오해는 거부권 행사가 곧 위헌 판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는 이유는 위헌 소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책적 판단의 차이, 예산 부담, 다른 법률과의 충돌 등 다양한 이유로 거부권이 행사될 수 있다. 법률의 위헌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최종 판단한다.
거부권은 민주주의의 교란 요소가 아니라, 헌법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권력 균형의 산물이다. 행사 빈도나 맥락에 따라 정치적 해석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 헌법적 기능은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합의를 촉진하고, 성급한 입법을 재검토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
자주 묻는 질문
대통령 거부권과 법률안 재의요구권은 같은 말인가요?
맞습니다. '거부권'은 언론과 일상에서 통용되는 표현이고, 헌법과 법령에서 쓰이는 공식 용어는 '법률안 재의요구권'입니다.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이의를 제기하여 국회에 다시 의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권한을 가리킵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 법률은 무조건 폐기되나요?
아닙니다. 거부권 행사는 법률안을 국회로 돌려보내는 것일 뿐, 최종 폐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재의결하면 그 법률안은 대통령의 공포 없이도 법률로 확정됩니다.
대통령은 어떤 법률안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나요?
원칙적으로 국회에서 의결된 모든 법률안에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헌법 개정안은 국회 의결 후 국민투표로 확정되므로, 대통령이 법률안 재의요구 절차를 적용할 대상이 아닙니다. 예산안 역시 별도의 절차가 적용됩니다.
거부권 행사 기간인 15일을 넘기면 어떻게 되나요?
헌법 제53조는 법률안 이송 후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재의를 요구하도록 규정합니다. 이 기간 내에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법률안은 자동으로 법률로 확정됩니다. 이를 '묵시적 공포' 또는 '자동 공포'라고 부릅니다.
부분 거부권은 왜 허용되지 않나요?
현행 헌법은 법률안을 하나의 단위로 보아 전체를 재의 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특정 조항만 선별적으로 거부할 경우 행정부가 입법 내용을 임의로 변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입법권의 본질을 침해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항목별 거부권을 두기도 하지만, 한국 헌법은 이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국회의 재의결 정족수 '3분의 2'는 어떻게 계산하나요?
출석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기준입니다. 예를 들어 재적의원 300명 중 200명이 출석했다면, 출석의원 200명의 3분의 2인 134명 이상이 찬성해야 재의결이 성립합니다. 재적의원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헷갈리지 않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