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9월 13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산 반도체와 전자부품이 미국 시장에 도달하는 주요 경로가 중국에서 아세안(ASEAN)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중 무역 갈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가운데, 2022년 기준 한국산 컴퓨터·전자·광학 제품의 18.6%가 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 등 아세안 5개국을 거쳐 미국 소비·투자 시장에 유입된 반면, 중국 경유 비중은 17.0%에 머물렀다.
한국은행 9월 13일 보고서 핵심 내용
한국은행은 9월 13일 공개한 글로벌 가치사슬(GVC) 분석 보고서에서 미중 갈등이 본격화된 이후 한국의 무역 경로가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를 추적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양국과의 경제적 연결을 모두 유지하면서 아세안 등 제3국 생산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아주프레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한국산 반도체와 전자부품이 미국 수요자에게 도달하는 경로에서 중국 공장을 거치는 비중이 줄고 동남아시아 공장을 거치는 비중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중 무역 갈등 이후 공급망이 재편된 결과로, 한국 기업들이 아세안 생산 거점을 통해 미국 시장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세안 경유 18.6%, 중국 경유 17.0%…역전 확인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수치는 반도체를 포함한 컴퓨터·전자·광학 제품 분야의 경로 변화다. 2022년 기준, 이 분야에서 미국 최종 소비·투자에 도달하는 한국산 제품 중 18.6%가 아세안 5개국(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을 경유했다. 같은 기간 중국 경유 비중은 17.0%로, 아세안이 중국을 추월한 것이다.
전 산업 기준으로 보면 변화가 더욱 뚜렷하다. 6년간 중국을 경유해 미국에 도달하는 한국산 중간재 비중은 10.7%에서 6.8%로 하락한 반면, 아세안 5개국 경유 비중은 4.9%에서 8.3%로 상승했다. SBS 영문 보도에 따르면, 같은 기간 컴퓨터·전자·광학 제품 분야에서 미국과의 연결 비중은 12.8%에서 21.0%로, 중국과의 연결 비중은 11.2%에서 19.4%로 각각 확대되었다.
GVC 데이터로 본 공급망 재편 흐름
| 구분 | 6년 전 | 2022년 | 변화 |
|---|---|---|---|
| 전 산업 중국 경유 → 미국 비중 | 10.7% | 6.8% | ▼ 3.9%p |
| 전 산업 아세안 경유 → 미국 비중 | 4.9% | 8.3% | ▲ 3.4%p |
| 전자·반도체 분야 미국 연결 비중 | 12.8% | 21.0% | ▲ 8.2%p |
| 전자·반도체 분야 중국 연결 비중 | 11.2% | 19.4% | ▲ 8.2%p |
| 반도체 아세안 5개국 경유 → 미국 | — | 18.6% | 중국 17.0% 추월 |

미중 갈등이 만든 ‘아세안 우회 루트’
이번 한국은행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는 한국이 미중 지정학적 분열 속에서 양국 모두와 경제적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아세안 등 제3국 생산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이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을 합산한 한국 전자 제품의 최종 수요 비중은 6년 전 24.0%에서 2022년 40.4%로 확대되었다. 이는 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지만, 그 경로는 중국 직접 경유에서 아세안 생산 거점을 통한 우회로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트남은 이 같은 공급망 재편에서 가장 중요한 중간 거점으로 부상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주요 기업들은 이미 베트남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 시장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도 한국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황 속 공급망 다변화 가속
이번 보고서가 발표된 시점은 한국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 호황을 기록하고 있는 시기와 맞물린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6년 8월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09.0% 급증한 466억 5,000만 달러로 월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금액은 8월 전체 상품 수출액 982억 5,000만 달러의 47.5%에 해당한다.
9월 초순(1~10일) 수출도 350억 달러로 같은 기간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며, 이 중 반도체 수출이 270.1% 증가한 164억 8,000만 달러를 차지해 전체 수출의 47.1%를 점유했다. CNBC는 한국의 반도체 수출 급증이 우려를 낳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수출 대상국별로도 변화가 뚜렷하다. 8월 기준 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119% 증가한 241억 달러, 아세안 수출은 75% 증가한 190억 9,000만 달러, 미국 수출은 89.3% 증가한 165억 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한국은 이러한 수출 호조에 힘입어 9월 13일부터 시행된 산업스파이법 강화를 통해 반도체 기술 보호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 ‘양면 전략’의 의미
한국은행의 이번 분석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미중 갈등 속에서 취하고 있는 ‘양면 전략’의 실체를 데이터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국과 중국 모두에 대한 수출 비중이 확대되고 있지만, 미국 시장에 도달하는 경로는 중국 직접 경유에서 아세안 우회로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기술 규제와 관세 정책이 강화될수록 한국 기업들이 아세안 생산 거점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SK·삼성·앰코가 서남권에 896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것도 이러한 공급망 재편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향후 전망: 공급망 재편 가속화 예상
전문가들은 미중 기술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아세안 경유 수출 비중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중국산 반도체 장비와 소재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이 아세안 생산 기지를 통한 우회 경로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현재 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반도체가 전체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아세안 경유 공급망 다변화가 이 같은 수출 호조를 지속시키는 핵심 동력이 될지, 아니면 미국의 우회 수출 규제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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